1. 올해의 아티스트

박재범

솔로 커리어의 시작과 함께 숙명처럼 따라붙은 자기증명의 과제와 그에 따른 힙합 커뮤니티의 눈초리는 야박했지만, 근 몇 년 사이 박재범이 걸어온 발자취는 이 모든 걸 불식시킬 정도로 강렬했다. 그의 2017년은 아티스트로는 커리어 하이의 순간에서 출발했고, 그럼에도 개인 작품 활동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해를 돌이켜보았을 때, 단순히 아티스트 박재범만을 기념하기엔 모자람이 있어 보인다. 스스로 정점에 이른 순간, 다음으로 개인의 영광만이 아닌 더 폭넓은 패밀리의 탄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AOMG도 굳건했지만, 하이어 뮤직(H1GHR Music)을 설립하며 다음 세대의 시작을 손수 열었고, 여기에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동반되었다. 더군다나 락 네이션(Roc Nation) 합류라는 깜짝 소식으로 지역적 경계까지 넓혔으니, 확실히 2017년 박재범이 보인 움직임과 영향력이 막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

디피알 라이브

디피알 라이브(DPR Live)는 역대 한국힙합 신인 중에 가장 혜성처럼 등장하여 가장 큰 파급력을 보여준 래퍼 중 한 명이다. 2016년, “응프리스타일 (Eung freestyle)”이나 오왼 오바도즈(Owen Ovadoz)의 “긍정” 등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로 기대감을 키운 그는, 2017년 들어 리스너들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줬다. 올해 초 발표된 첫 EP [Coming To You Live]는 디피알 라이브만의 세련된 랩스킬을 비롯한 독보적인 음악적 색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또한, 소속 크루 디피알(DPR)의 멤버들이 만든 뮤직비디오는 그의 음악을 완벽에 가깝게 예술적으로 표현해냈다. 이렇듯 올해 디피알 라이브가 자신의 크루와 함께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들이 신진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2017년, 많은 신인 아티스트가 발자국을 남겼지만, 아마 그의 발자국이 가장 뚜렷하게 기억되지 않을까.

3. 올해의 힙합 앨범

리짓군즈

Junk Drunk Love

매년 화려함과 팬시함을 중심으로 한 메가 트렌드가 씬을 훑고 지나가면 그 대척점에 선 작품들은 온전히 작품으로서 홀몸인 채로 생사의 기로에 선다. 누군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영역은 힙합 커뮤니티가 언제나 갈구해오며 한 줄기 빛이 스며들까 주목하고 있는 좁고 기다란 틈과도 같다. 리짓군즈(Legit Goons) 또한 이 길고 좁은 틈 안으로 자신들을 보이기 위해 다년간 고군분투해온 집단 중 하나다. 그들이 올해 발표한 세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Junk Drunk Love]는 여느 때와 같이 여유와 낙관 속에서 탄생했지만, 지난해와는 또 다른 단단함을 갖고 있다. 그들 특유의 단출한 테마로 시작해 작은 소품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전작보다 더 완성도를 갖췄으며, 이 점에서는 멤버 개개인의 발전된 역량이 큰 역할을 해냈다. 냉혹한 현실과 파라다이스의 중간 지점에서 삶을 따뜻하게 관조하거나 냉소적으로 비꼬는 시선조차 청자들에겐 래퍼 개개인의 시야가 아닌 리짓군즈라는 집단의 필터로서 수렴됐을 것이다. [Junk Drunk Love]는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한 집단의 협연이 녹아 있는 앙상블 같은 앨범이다.

4. 올해의 힙합 트랙

우원재

시차 (Feat. Loco & Gray)

이제 '밤새 모니터에 튀긴 침이 마르기도 전에'라는 구절을 모르는 대한민국 청년은 아마 없지 않을까? 2017년, “시차”는 우원재를 비롯해 많은 이에게 의미가 있는 곡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런 인지도가 없던 그는 <쇼미더머니 6>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만큼 여러 꼬리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이야기만 한다', '소화할 수 있는 비트가 제한적이다' 등 그의 한계는 쉽게 규정되었다. 그러나 우원재는 “시차”를 통해 타인으로부터 그어진 자신의 한계를 가볍게 깨부쉈다. 그레이(Gray) 특유의 밝은 비트를 인기를 얻으며 달라진 자신의 모순적인 상황을 시차에 빗대며 소화했고, 어두운 무드의 비트에 우울과 관련된 주제가 아니면 랩을 할 수 없다는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를 응원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통쾌한 한 방이었다. 대중적임과 동시에 음악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시차”는 올해 가장 널리 울려 퍼지며 가장 많은 이의 마음속에 박힌 힙합 트랙이었다.

5. 올해의 알앤비 앨범

히피는 집시였다

나무

음악 장르 앞에 ‘한국적’이란 말을 덧붙이면 퓨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낳은 끔찍한 혼종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히피는 집시였다의 정규 1집 [나무]는 굉장히 묘하고 이상적인 결과물로 현시대의 트렌드인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매우 한국적인 분위기를 띤다. 팀은 어색함 없이 동양적 분위기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우선, 감독 역할을 한 프로듀서 제이플로우(Jflow)가 여백을 적절히 살리는 식으로 뼈대를 굳건히 세운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셉(Sep)은 한국을 대표하는 슬픔의 정서인 ‘한’이 서려 있는 듯한 보컬로 몰입도를 배가한다. 독특한 소리로 유지되는 일관된 무드,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며 표현되는 절제된 감정, 화려함 없이 담담하기만 한 보컬이 함께 있고, 이를 통해 듣는 이를 전율케 한다. 또한, 대부분 한글로 이루어진 가사는 구체적이지 않아 되려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긴다. 목소리를 보탠 오르내림(OLNL)과 소마(SOMA) 역시 평소의 폼보다 더 활약했고,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의 피처링은 화룡점정이었다. 그 결과, 히피는 집시였다는 트렌드를 흡수하면서도 결코 뒤따르지 않았고, 반대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창조하는 자신들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게 했다.

6. 올해의 알앤비 트랙

오프온오프

gold (Feat. Dean)

오프온오프(offonoff)의 “gold”는 딘(Dean)이 함께한 노래다. 딘의 조금은 퇴폐적이고 치명적인 이미지에 비하면 상당히 밝은 편에 속하는 곡인데, 그래서인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채널(0channel)의 미니멀한 비트, 자신의 자유로운 음악관을 표현한 콜드(Colde)와 딘의 가사, 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신선한 멜로디 라인이 한데 어우러진다. 콜드가 곡의 바이브와 조화를 이루는 편이라면, 딘은 조금 더 스킬풀하게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아침이 밝아오는 듯한 느낌의 듣기 편함과 동시에 짜임새 있는 트랙이다. 비록 딘의 파트가 빠져 있지만, 원테이크로 촬영된 뮤직비디오 또한 자전거를 타는 모습과 그 속의 풍경을 통해 곡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 것이 돋보였다.

7. 올해의 프로듀서

그루비룸

그루비룸(Groovy Room)은 2017년 가장 많은 곡을 만든 프로듀서이자, 가장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프로듀서다. 우스갯소리로 그들을 ‘비트공장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칭찬이 될 수 있는 건 프로듀싱한 모든 곡이 하나같이 하이파이했기 때문이다. 올해 발표한 첫 EP [EVERYWHERE]의 제목처럼 그루비룸은 장르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존재했고, 어디에서나 가장 눈에 띄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버벌진트(Verbal Jint)부터 더블케이(Double K), 식케이(Sik-K), 박재범(Jay Park), 그리고 넬(Nell)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서로의 색깔에 위화감 없이 녹아드는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젊다. 2017년에 보여준 행보는 앞으로 그들이 걸어갈 길에 비하면 평범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루비룸이 2017년 들어 선보인 퍼포먼스들은 한국힙합 씬 내외로 프로듀서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보라고 할 수 있다.

8. 올해의 콜라보레이션

서사무엘, 김아일

Mango

“Mango”는 아티스트의 아티스트 서사무엘(Samuel Seo)과 김아일(Isle Qim)이 합작한 작품이다. 왜 그들은 '아티스트의 아티스트'라고 불릴까? 단연 독보적인 색깔 덕분이다. 그렇다고 둘이 함께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장담하긴 또 어려운 노릇이다. 서로 다른 뚜렷한 색깔을 적절히 섞어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건, 자칫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색이 될 수 있다는 리스크도 어느 정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ango”는 그러한 리스크보다는 메리트가 큰 곡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아티스트의 독보적인 개성이 훵키한 비트 위에서 찰떡궁합을 이루었다. 서사무엘의 드라이한 톤에 김아일의 통통 튀는 톤이 쌓는 화음은 마치 그들이 원래 한 팀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고 완벽했다. 아티스트의 아티스트들이 개성과 화합을 동시에 보여주며 환상의 ‘케미’를 터뜨린 노래.

9. 올해의 과소평가된 앨범

TFO

ㅂㅂ

TFO의 앨범 [ㅂㅂ]을 무작정 레프트 필드, 얼터너티브, 대안과 같은 단어로 퉁치기는 아깝다. 서사로 치면 앨범 안에는 유머도, 냉소도, 비판도 있으며, 음악으로 치면 구조에서 오는 흥미, 견고하게 만들어진 소리의 구성, 그것이 트랙별로 옮겨 다니는 층위에서 발생하는 케미 같은 것들이 있다. 뻔하지 않다는 것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순 없지만, 이 앨범은 뻔하지 않은 동시에 재미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이미 몇 매체가 [ㅂㅂ]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과정에서 앨범 자체에 관한 것보다 앨범을 둘러싼 이야기가 더욱 중심이 되는 듯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앨범은 힙스터가 아니어도, 음악적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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